할리우드 배우-작가 ‘공동파업’ 돌입, “OTT 열풍 이후 처우 악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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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조합과 작가조합의 뉴욕 공동 시위 현장/사진=배우조합 페이스북

할리우드에서 약 60년 만에 작가와 배우가 동시 파업에 착수한다. 16만 명의 배우들이 소속된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 이하 배우조합)의 수석협상가 던컨 크랩트리-아일랜드는 이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조합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도부 투표로 오늘 밤 12시(현지 시간)부터 파업을 시작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OTT 서비스 활성화로 인한 재상영분배금(residual) 감소를 문제로 내걸었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상용화 이후 신디케이션 기회가 감소해 실질 수익이 줄어들자 처우 개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앞서 지난 5월 시작된 미국작가조합(WGA, 이하 작가조합) 파업에 국내 시장이 동참한 가운데, 이번 할리우드 대파업은 국내 시장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게 될까.

할리우드 배우-작가조합의 ‘동반 파업’

배우조합은 지난달 7일 파업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에서 98%의 찬성표를 얻으며, 협상 결렬 시 곧바로 파업에 돌입한다는 계획 아래 영화·TV제작자연맹(AMPTP)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이후 배우조합은 12일(현지 시간) 넷플릭스, 디즈니, 디스커버리-워너 등 대형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AMPTP와 막판 고용계약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됐고, 13일 파업이 결의됐다.

배우조합의 이번 파업은 1980년 이후 43년 만이며, 앞서 파업에 돌입한 작가조합과 동반 파업이 이뤄지는 것은 1960년 이후 63년 만이다. 할리우드 작가 9,000여 명이 소속된 작가조합은 지난 5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대가 도래한 이후 제작 환경이 악화했고, 재상영분배금 감소로 인해 사실상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배우조합 역시 작가조합과 마찬가지로 OTT 서비스 활성화에 따른 재상영분배금 문제와 기본급 인상,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권리 보장 등을 문제 삼았다.

작가조합이 파업을 시작한 지난 5월부터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상당수 작품의 제작이 지연·중단된 가운데, 배우 16만 명이 본격적인 파업에 착수할 경우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파업에 동참 의지를 밝힌 배우 중에는 맷 데이먼, 메릴 스트립, 마크 러팔로, 제니퍼 로렌스, 제시카 차스테인 등 유명 배우도 다수 포함돼 있다.

창작진의 수익 감소 주장, 관건은 ‘재상영분배금’

할리우드 작가·배우들은 OTT 서비스가 콘텐츠 시장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으며 작품 수익이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출연 작품의 지식재산권(IP)이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에 넘어가면서 시청자들이 작품을 볼 때마다 지급되는 로열티인 ‘재상영분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일반적인 TV 시리즈 드라마는 먼저 본방송이 송출된 이후 신디케이션을 거쳤다. 신디케이션은 흔히 말하는 ‘재방송’을 일컫는 용어로, 제작사에서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고 개별 독립 방송국에 콘텐츠를 납품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동안 작가, 배우 등 창작진은 신디케이션과 2차 판권 시장(DVD, 블루레이 판매) 등을 통해 본방송 외 ‘재상영분배금’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OTT 플랫폼이 콘텐츠 시장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수많은 OTT ‘오리지널 시리즈’가 제작되면서 신디케이션을 비롯한 창작진의 추가 수익 창출로가 사라졌다. 이에 업계에서는 OTT 플랫폼이 함께 ‘저임금 노동’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밥 아이거 디즈니 CEO(최고경영자)가 파업을 벌이는 작가들과 배우들의 요구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하고 나선 만큼 차후 OTT 플랫폼과 창작진 갈등의 골은 한층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비롯한 전 세계 창작진 “힘 보태겠다”

한편 작가조합은 배우조합에 앞서 지난 5월 2일부터 본격적인 파업에 돌입한 상태다. 작가조합은 지난 2007년 파업을 통해 넷플릭스가 정액 징수 방식으로 작가를 위한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도록 요구한 바 있다. 이들이 시청 시간에 비례하는 보상을 고집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넷플릭스가 어디까지나 레거시 미디어의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콘텐츠 시장의 중심축이 OTT 플랫폼으로 옮겨 가면서 창작진 보상 문제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실제 유럽의회의 경우 지난 2019년 스트리밍 업체도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창작진에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명령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에 현재 유럽연합(EU)의 27개 회원국 중 26개 국가가 해당 명령을 자국의 저작권법에 반영했으며, 이들 국가의 작가 단체들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들과 ‘정당한 보상’의 계산 방식을 두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작가조합(WGA) 시위 현장/사진=WGA

우리나라도 저작권법에 ‘정당한 보상’을 명문화하는 개정안이 유정주 의원과 성일종 의원에 의해 발의돼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나, 국내외 OTT들의 집요한 반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모호한 태도로 인해 개정안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로 표류 중이다.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GK)은 2018년부터 국제작가조합연맹(International Affiliation of Writers Guilds: IAWG)에 가입, 글로벌 OTT들의 약탈적 관행에 대한 대처 방안을 논의해 왔다. WGA는 이번 파업에 돌입하며 IAWG와 유럽작가연맹(FSE)에 동참을 요청했고, 이에 우리나라 SGK를 비롯한 IAWG와 FSE의 작가 단체들은 지난 6월 14일 파업 지지 시위를 진행했다. 국내에서는 넷플릭스 한국지사 건물 앞에서 SGK의 이승현 작가가 1인 시위자로 나섰으며, 웹툰작가노동조합의 하신아 위원장도 1인 시위로 파업에 동참했다. 아울러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와 국제사무직노동조합연맹 한국협의회도 가세해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