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진짜 위기’ 한국 극장가, ‘기사회생’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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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의 위기다. 늘 반복되던 식상한 경고성 캐치프레이즈지만 이번에는 칼날이 코앞에 놓여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생존의 기로에 놓인 CJ CGV,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중앙 등 주요 영화관 사업자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자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코로나19, 아직도 아픈 한국 극장가

“침체의 터널 끝이 보인다”는 정부의 낙관적인 경제 회복 전망도 극장계에는 남 일 같다. 정부가 이달 초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 발표를 통해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약속했지만, 극장계는 당장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쌓인 100편에 가까운 미개봉 영화 재고 처리도 골치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2022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가는 천만영화 <범죄도시2>, <아바타: 물의 길> 등이 잇따라 흥행하며 전체 극장 수입 1조1,602억원을 기록했다. 팬데믹 이후 5,000억원대로 추락했던 연매출이 처음 1조원대로 회복했지만, 여전히 팬데믹 전인 2019년에 비하면 5분의 3(60.6%) 수준에 불과하다.

영화 투자 및 배급을 주력으로 하는 국내 영화 산업의 대표주자 쇼박스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쇼박스는 전년도에만 3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전년도야 코로나19의 여파가 남았다지만 엔데믹으로 전환된 올해 1분기에도 소폭의 이익(8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쇼박스의 2대주주 참여 의사를 밝히며 1,317억원의 투자를 약속했던 미국 실리콘밸리 투자사 MCG(Maum Capital Group)도 자사 경영이 악화돼 손을 놨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한 대응책으로 쇼박스는 ‘크리에이터 중심 선순환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차세대 플랫폼과 글로벌 시장에 K-콘텐츠 흥행을 노리고 있다. 또한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및 OTT 시리즈 제작에 집중하는 등 비즈니스 모델 전환에도 힘쓰고 있다.

CJ CGV,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중앙도 다양한 방식으로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며 격변하는 시장을 헤쳐 나가고 있다. 롯데컬처웍스는 최근 700억원 규모의 사모사채를 발행했고, 메가박스중앙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초단기 기업어음을 발행하며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역대급’ 최저가 경신한 CGV

CGV는 3년 넘게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0년에는 38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21년에는 768억원, 2023년 1분기에는 141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희망퇴직, 무급휴직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한 몸집 줄이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CGV의 연쇄 적자는 주식시장에도 충격파를 던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CGV 주가는 유상증자 발표 후 더욱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21일 CGV는 재무구조 개선과 신사업 추진을 위해 유상증자를 통해 약 1조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을 발표하자 같은 날 CGV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1.10% 하락한 1만1,400원에 마감하며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이후에도 CJ CGV 주가는 급락을 거듭하며 지난 7일에는 2004년 12월 상장 후 최저가인 8,700원에서 거래가 마감됐다.

극장 산업이 금세 회복되기 어렵다는 시장의 컨센서스도 투자심리 악화를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계속되는 적자와 재무구조 악화로 CGV 부채비율은 올해 1분기 기준 무려 912%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 차입금도 3,383억원에 이른다. 이는 CJ CGV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인 3,669억원에 맞먹는 규모다.

출처=구글 금융

투자자 ‘실종’ 사태

이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사태가 있었던 3년 동안 성공적인 개봉작도 없었다. 투자자들이 3년 동안 손실만 봤다는 의미다. 손실이 누적된 기타 투자자들 대부분이 등을 돌리며 쇼박스, CJ와 같은 주요 투자사가 영화 총 제작비의 20~30%만 부담하는 영화계의 기존 펀딩 모델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에 주요 영화 사업자들은 제작비의 70~80%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관객 감소와 시장 위축으로 인해 리스크가 점차 확대하자 선뜻 투자에 나서는 곳마저 줄어들고 있다.

투자자가 없으니 영화 제작도 중단됐다. 영진위에 따르면 현재 제작되고 있는 신작 영화는 10편이 채 안 된다. 올해 1분기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29.2%에 불과하다. 2019년 1분기 점유율이 64%였던 점과 견줘볼 때 절반 이상 감소한 수치로, 이는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 감소 여파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 시장 전반의 위기는 아닐지 몰라도 한국 영화의 위기임은 확실한 셈이다.

정부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영화 티켓에 대한 세액 공제, 영상 콘텐츠 제작에 대한 세제 지원 확대 등 영화 산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 브리핑을 통해 “코로나19 기간 개봉 못 한 영화가 100편에 이른다. 개봉이 돼야 자금이 선순환돼 재투자가 이뤄지고 영화가 새로 만들어질 수 있다”며 “세제뿐 아니라 재정을 투자해서라도 지원해 줄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설상가상, 푯값에 뿔난 소비자

관객들은 푯값이 높으니 영화관이 망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최근 영화관 티켓값에 분노를 토하는 글이 SNS 등지에서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관이 정말로 망하면 어떻게 될까. 일본 영화 산업의 선례를 비춰볼 때 투자자들은 <강철의 연금술사>와 같은 팬무비나 <코난>과 같은 시리즈 영화에만 관심을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투자자들의 선택은 영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투자 모델인 ‘가성비’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다.

몇몇 관객들은 OTT에서 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OTT 플랫폼은 근본적으로 영화 제작에 특화돼 있지 않다. <덩케르크>나 <스파이더맨> 등 특정 장르와 연출법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전달될 것을 감안하고 제작된다. 이는 평면 스크린에서는 재현할 수 없는 경험이다. 극장은 영화 산업의 척추다. 멀티플렉스 업계가 망한다면 일부 열성적인 영화 팬들을 위한 극소수의 극장만 남아 마니아 시장으로 축소될 공산이 크다. 이는 결국 소비자의 손실이다.

무너지는 K-극장과 토종 OTT, 넷플릭스만 웃는다

재정적 차원에서도 영화가 OTT에 넘어간들 실익이 없다. 얼핏 글로벌 OTT를 통한 K-콘텐츠의 인기가 한국 극장 산업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진위가 제공한 데이터를 보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국내 극장 매출이 사상 최고치인 1조9,100억원을 기록한 2019년 이전까지만 해도 극장 매출은 전체 영화 산업 매출의 70~80%를 차지했다.

2019년 한국 영화의 극장 외 매출은 5,093억원을 기록했지만, 2020년에는 4,514억원으로 감소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에는 3,838억원으로 줄었고, 지난해에야 간신히 4,539억원으로 올라서며 회복세를 보였다. 극장 관람객 감소로 배급사가 신작 영화 개봉을 미루면서 IPTV와 인터넷 VOD 수익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청자 수가 100만 명이든 천만 명이든, OTT에서의 성공이 한국 극장 산업의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소비자들을 OTT에 빼앗기고 있는 상황임에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영화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OTT 플랫폼들로 인해 극장계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OTT가 호황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OTT 플랫폼이 영화관의 강력한 적수로 부상했지만 국내 토종 OTT들은 극장 산업에서 떨어져 나오는 파이조차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발표한 ‘2023년 OTT 앱 시장 동향 분석’에 따르면 넷플릭스, 티빙, 쿠팡 플레이 등 주요 OTT 앱의 2023년 4월 설치 수는 전년 동기(2,979만 건) 대비 7.5% 증가한 3,008만 건을 기록하면서 OTT 산업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에서도 ‘공룡’ 넷플릭스는 1,156만 명으로 전체 시장 점유율 63.6%를 차지하며 꾸준한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5년간 넷플릭스 이용자가 200만 명에서 1,200만 명으로 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티빙, 웨이브 등 토종 OTT들은 400만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대부분의 수요를 사실상 넷플릭스가 먹어 치웠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넷플릭스의 사용자 증가와 오프라인 극장의 쇠퇴는 영화 산업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